해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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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침 식사
Breakfast
마침내 리무스가 예언자 일보 읽는 것을 포기하고 반으로 곱게 접어 내려놓았을 때 그의 두 친구는 이미 식사를 중단한 뒤였다. 두 친구의 시선은 리무스의 바로 앞에 앉은 남학생에게 고정되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남학생의 이름은 제임스 포터로, 평소 같았으면 그의 오른쪽에 앉은 베스트 프렌드와 농담 수십 개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거나, 그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학생들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주고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대연회장 건너 반대쪽을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하면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가 5분 전쯤 집어 들었던 숟가락에서는 토마토 스프가 그의 망토 위로 뚝뚝 떨어졌지만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리무스는 제임스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시리우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떨어져 다니는 일이 거의 없는 시리우스라면 이 말도 안 되는 ― 아침 연회의 그리핀도르 테이블이 다른 기숙사보다 조용한 ―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잘생긴 얼굴에 그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당황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 리무스는 저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뭔데 그래?"
“그것 참 좋은 질문이란 말이지, 리무스.”
시리우스가 재빨리 말했다. 그는 할 말이 무척 많은 얼굴이었다.
“대체 얘 왜 이러는 거야? 아까 욕실에서 피터한테 엿가락 다리 주문을 쏠 때만 해도 정상이었다고.”
“휴게실에서 되도 않는 노래를 부를 때까지도 정상이었지.”
리무스가 거들었다. 시리우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제임스는 자신을 두고 대화가 이어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제임스의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다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슬리데린?”
리무스는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테이블은 연회장의 양 끝에 있었고 제임스는 벽을 등지고 앉았기 때문에, 그가 바라보고 있는 쪽이 슬리데린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도대체 아침부터 ‘밥맛 떨어지고’ ‘재수 없게’ 슬리데린 테이블을 쳐다 볼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얘 다이어트한대?”
시리우스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리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장 어젯밤만 해도 투명망토를 쓰고 주방에 나가 간식을 쓸어 담아 왔던 것이다. 리무스의 왼쪽에 앉아 타르트를 입에 쑤셔 넣던 피터가 불쑥 껴들었다.
“퀴디치 때문에 몸매 관리 하는 거 아닐까?”
“피터, 얘 추격꾼이잖아. 몸싸움 하려면 지금보단 더 쪄야지.”
리무스가 현명하게 지적했다. 피터는 우물거리며 몇 마디 더 했지만 연회장의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집에서 쫓겨났나보다.”
시리우스는 상당히 현실성 있는 주장을 했다. 호그와트 입학 이후 지금까지 매년 징계 회수를 갱신하고 있는 제임스 포터가 아직도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사실 신기한 일이긴 했다. 시리우스는 진작에 자식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그건 아닐 걸.”
리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시리우스는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마침 수백 마리의 부엉이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가 잠시 끊겼다. 부엉이들은 공중을 휭휭 돌며 날아다니다가 제 주인을 찾아 내려왔다. 네 친구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도 소포가 툭 떨어졌는데, 겉봉투 위엔 ‘제임스에게, 사랑을 담아, 엄마가’ 라고 쓰여 있었다.
“봐.”
리무스가 고갯짓을 했다. 시리우스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엄마의 사랑이 담긴 우편물이 도착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이 이어졌지만(“‘그 날’인 거 아냐?” 시리우스는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리무스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좀처럼 딱 맞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제임스는 숟가락으로 스프를 뜨고, 생각에 잠기고, 그 스프가 몽땅 망토에 떨어지고, 다시 스프를 뜨는 과정을 반복한 덕에 그의 망토는 토마토 스프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제임스.”
보다 못한 시리우스가 제임스의 손에서 수저를 빼앗았다. 제임스의 손은 공중에서 멈춘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포터!”
마침내 짜증이 폭발한 시리우스가 그의 귀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자 제임스는 의자에서 떨어져 굴렀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장난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같은 기숙사 학생들은 “살살 좀 해 시리우스, 제임스는 연약하다고.” 따위의 농담을 던졌지만 시리우스는 그걸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툴툴거리며 제임스에게 손을 뻗었고, 제임스는 멍청하니 시리우스의 손을 바라보다가 시리우스가 재촉하고 나서야 손을 잡고 일어나 다시 자리에 앉았다.
“테르지오.”
리무스는 지팡이를 제임스의 망토에 겨누었다. 그러자 그의 망토에 얼룩져 있던 토마토 스프가 깔끔하게 빨려 들어갔다. 제임스는 꼭 머글이 처음 마법사를 접한 것 같은 얼굴로 리무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리무스는 약간 무안해져서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남은 식사 시간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제임스는 더 이상 멍하게 있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말을 하지도 않은 채 식사에만 집중했다. 남은 세 친구도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여기고 아침밥을 먹었다.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네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오늘 시간표는 어떻게 되지? 리무스?”
“넌 왜 항상 나한테만 물어보는 거야?”
“첫째, 아직까지도 교실을 헤매는 피터에게 그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라서. 둘째, 지금 얘 상태가(시리우스는 제임스를 툭 쳤다.) 반쯤 맛이 가서. 셋째, 나는 못 외우고, 넷째, 너는 외우니까.”
피터는 낄낄거리고 웃었지만 리무스는 냉소 한 번 지을 뿐이었다.
“그 것 참 똑똑하구나, 시리우스. 그 똑똑한 머리로 금요일 첫 수업이 마법 수업이라는 걸 외워주면 좋을 텐데.”
“마법이라고?”
제임스가 되묻자 리무스는 깜짝 놀라 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연회장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말을 한 것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지. 필리우스 플리트윅 교수님의 수업이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리무스가 서둘러 말했다.
“맞아, 그건 3층 마법 교실에서 하고 그리핀도르 단독 수업이야. 그리고 혹시나 네가 모를까봐 알려주자면 네 이름은 제임스 포터야.”
시리우스가 덧붙였다. 그의 태도는 꼭 성 뭉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막 깨어난 기억 상실증 환자를 다루는 듯했다. 제임스는 픽 웃었다.
“그래 잘 알지. 너는 시리우스 블랙이고 말이야.”
“얘는 누군지 알아?”
“리무스 루핀.”
말을 하기 시작한 제임스를 보고 리무스는 마음을 놓았다. 어디 ― 머리 쪽이 ― 아픈 게 아닐지 슬슬 걱정되려던 참이었다. 세 친구는 제임스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궁금해 죽으려는 표정의 피터를 뒤로 하고 시리우스가 제임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 그래. 마법 시간에 연습할 마법이나 생각해 둬. 침묵 마법은 이제 지겨워.”
네 사람은 이중문을 통과해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기숙사에 들러 교과서를 챙기고 마법 교실로 내려가는 가장 빠른 루트를 생각하고 있던 리무스는 연회장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학생 한 명을 알아보았다. 그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로, 평소 같이 다니던 슬리데린 친구들은 어디에 떨구고 왔는지 혼자였다. 이건 무척이나 좋지 않은 징조였다. 리무스는 아침부터 말썽이 일어나는 것은 딱 질색이었으므로, 자신의 친구들이나 스네이프가 이곳이 교수님들로 가득한 연회장 앞이라는 것을 상기해 두었길 바라면서 스네이프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리무스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친숙함을 느끼면서 그가 저렇게까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구일지 문득 궁금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스네이프가 제임스의 앞에 뛰어들면서 분명해졌다. 시리우스의 눈은 가늘어졌고 리무스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인상을 썼다.
“…그럼 기절 마법을 연습하는 게 어때?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곧 배울 거라고 하더라.”
스네이프를 무시하려는 시도로, 리무스가 수업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 시도가 무색하게도 스네이프가 제임스를 향해 딱딱하게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
“네가? 제임스한테?”
시리우스는 과장되게 놀라워했다.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구나. 뭐든 비열하게 캐내려고 숨어드는 놈인 줄 알았는데.”
리무스는 그제야 이 만남이 지난번의 그 위험천만했던 보름 이후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건 무척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엄청나게 나쁜 것 이상의 문제였다. 리무스는 시리우스를 슬쩍 보았고,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시리우스는 한 걸음 물러서면서도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제임스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제발 쓸데없는 관심은 꺼줘. 피곤하―”
“―그리고 너도 할 말이 있을 텐데, 제임스 포터.”
스네이프는 시리우스의 말을 딱 잘랐다. 시리우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는 지팡이를 꺼내기 위해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리무스가 급히 그를 말렸다.
“안 돼, 시리우스. 연회장 앞이고 금방 교수님이 오실 거야.”
“그래 맞아, 안 돼.”
제임스였다. 리무스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귀를 살짝 긁었다. 지난 4년간, 아침 식사 때라 교수님들이 가득한 연회장 앞이라는 사소한 문제 같은 건 고려해본 적 없는 제임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제임스가 시리우스를 말린 것이었다. 얼른 쳐다본 시리우스도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피터는 입을 떡 벌린 채로 굳어 있었다.
“나 쟤랑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어… 너희는, 기숙사에 먼저 돌아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 아니, 기숙사에 먼저 돌아가 있어.”
뭔가 말하려는 시리우스에게 제임스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시리우스의 팔에서 빠져나와 섰다. 그는 뭔가 굉장히 다급해 보였다.
“어서 가라니까.”
제임스가 가만히 서 있는 친구들을 재촉했다. 리무스와 시리우스, 그리고 피터는 제임스를 한 번, 스네이프를 한 번, 그리고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고 걸음을 옮겼다.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를 통과할 때까지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를 할 수가 없군.”
침실로 돌아와 교과서를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던 시리우스가 말했다. 리무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너희가 이번에 받을 징계가 트로피 보관함 청소일지 정문 앞 복도 걸레질일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건 확실히 트로피 보관함 청소일거야. 왜냐면 어제 나랑 제임스가 부엌에서 돌아오면서 슈크림을 흘렸거든.”
“그래? 내가 듣기론 똥폭탄 냄새가 진동을 한다던데?”
“글쎄 리무스, 난 슈크림만 흘렸다고 말 안 했다.”
시리우스가 씩 웃었다. 이번에는 리무스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