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생물들은 스스로 빛을 내기도 하죠.”
아동 심리학 시간이었나.
“쭉 뻗어 나온 전구 같은 것에서 빛을 냅니다. 전구처럼 말이에요.”
교수님은 칠판에 아귀같이 못생기고 험악한 물고기를 그리고 그 이마에서 쭉 그은 선 끝에 백열 전구를 그렸다. 몇몇 학생이 웃었다.
“하지만 심해 생물들은 대부분 장님입니다. 앞이 안 보이죠. 그러면 이 전구 같은 것들 왜 있느냐, 아예 빛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장님은 아니라는 겁니다.”
교수님의 말을 들으며 너는 떠올렸다. 심해. 아주 아주 깊은 바다. 햇빛이 들어가지 못하니 달빛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암흑의 공간. 얼음장보다 차가운 수온. 한 번 가라 앉으면 다시는 떠오를 일이 없는 해저. 칠판에 그려진 것 같은 험상궂은 물고기와 그 물고기가 내는 가늘고 실낱 같은 빛.
“그러니 빛 한 줄기 없는 곳에서 이런 물고기들이 내는 빛은, 빛을 내지 못하는 물고기들에겐 거의 햇빛이나 다름 없죠.”
심해에서 나고 자라 온 작은 물고기는 한 번도 뭔가를 본 적이 없다. ‘본다’는 감각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작은 물고기가 아는 것은 아가미로 바닷물을 마셔 호흡하는 법과, 뜨겁게 끓는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지대를 피해가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좀 더 크면 엄마처럼 짝을 만나 대를 이어가는 것 정도가 본능에 입력된 전부다.
그래서 더욱 놀라워한다. 사실 작은 물고기에게는 놀랍다는 것마저 생경하다. 물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는, 혹은, 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강하거나 약하거나 하는 그런 감각과는 전혀 다른 제3의 감각이 눈을 뜬다. 말 그대로 작은 물고기는 눈을 뜬다.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천만 년 수억 년을 지나면서 퇴화되어 허옇게 변해버린 눈을 아등바등 떠본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저것’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작은 물고기의 작은 뇌는 한계를 초과한 정보량을 받아들인 나머지 생각하는 것 이외의 다른 행동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저것’은 점점 가까이 다가와 ‘이것’이 된다. 작은 물고기는 시야를 가득 채운 이 요란스럽고도 찬란한 감각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마지막까지 애를 쓴다.
마지막까지.
“그러니 이 아귀 같은 놈은 빛을 보고 몰려든 다른 조그만 물고기 중에 꼭 뷔페처럼 하나를 잡아 먹으면 그 날 식사는 끝났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박힌 듯 고정되어 있다. 작은 물고기의 머리 속은 아직도 생각으로 가득하다. 접해보지 못한 것을 떠올리려는 시도는 참으로 부질없다. 그렇다고 해서 신기한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어른이 되지는 못하다.
아귀는 큼지막한 턱을 천천히 벌린다. 작은 물고기는 그 앞에 있다. 그 별 것도 아닌 빛에 취해 포식자가 근처에 오면 도망가라는 가장 중요한 본능마저 잊는다. 아귀는 노련한 사냥꾼이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이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냥감에게 더 빛을 쬐게 해줄 여유와 넓은 마음씨도 있다. 아귀의 턱이 닫히기 시작한다. 여전히 천천히.
빛은 작은 물고기의 전부를 삼킨다.
가장 환하게 빛나던 순간은 고통도 두려움도 주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혀와 눈을 감았다.
1초, 2초, 3초…. 시간이 흐르고 다시 교수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자리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샤프 펜슬의 느낌도 선하고 코로 느껴지는 나무 책상 특유의 냄새까지 현실이었다. 질끈 감은 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확실히 알아차렸다. 그렇구나, 여기는 강의실이구나, 심해가 아니구나, 하고.
숨을 쉬어도 차갑고 검은 물이 코로 입으로 목으로 마구 들어와 괴롭지 않겠구나, 하고.
눈을 떠도 칠흑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진 않겠구나, 하고.
안도하면서 눈을 떴다. 동시에 숨을 훅 들이켰다. 선선한 공기가 몸 속 깊은 곳까지 단숨에 차오르다가 꺼졌다.